[다음 글은 이성대 교수의 대한상사중재원 - 중재광장 343호에 게재 되었던 내용입니다. ]
일반적으로 협상력은 회사의 현재의 경쟁력과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회사의 경쟁력과 힘이 없으면 협상력 또한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회 사들도 처음에는 중소 벤처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회사들은 강력한 경쟁력과 힘 이 생기기 전에 이미 훌륭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 인지 와 같은 우문일지 모르지만 협상력과 회사의 경쟁력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례 1]
W사는 국내 대기업의 IT시스템 통합 회사로서 그룹 내의 계약 물량이 있어 어느 정도는 안정 적으로 운영 되고 있던 회사였다. 이 회사는 매출 성장에 대한 욕심은 컸으나 시장 점유율의 측 면에서 아직 순위가 높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술 또한 다른 회사보다 격차가 아주 클 정도로 앞 서 있지도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매번 계약을 할 때 마다 계약이 성사 되지 않을 지 혹은 여 타 사업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을 지 노심초사 하였다. 그래서인지 W사는 계약 시 상대방의 요 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었는데, IT 기업에서 중요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부분마저 상대방 에서 넘겨주는 형태로 대부분의 계약 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사실상 W사는 계약 협상의 측면 에서는 가격에 대한 부분만 어느 정도 맞으면 그대로 계약체결을 하는 것이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협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상대방에 중요 조건들을 양보하는 타협을 해 왔던 것이다. 회사가 경쟁력이 아주 뛰어난 것이 아니고 타사와의 경쟁도 치열했기 때문에 상 대와 협상을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고 이 회사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생각하 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 W사는 해외 기업으로 부터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 었는데, 이 해외 기업은 한국 참여를 목적으로 W사에 대한 지분 투자를 검토 하고 있었다. 외견상으로 W사는 어느 정도의 매출과 직원 규모가 있고 신규 계약도 활발히 잘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를 위한 사전 절차로 W사의 계약서류에 대한 실사 작업을 벌이던 중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사 결과에 따르면, W사는 오랫동안 IT 사업을 해 오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제대로 된 지적 재산권을 회사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 되었다. 말 그대로 껍데기뿐인 회사로 회사의 가치는 매우 낮게 평가 되었다. 그래서 이 해외 기업은 결국 W기업 에 대한 지분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현재도 W사는 뚜렷한 성장세가 없는 것으로 평 가된다.
[사례 2]
해외의 유명 SW회사인 L사는 IT 대기업들의 하청업체로 출발하여 지금은 세계 굴지의 SW회 사가 되어 있다. 이 SW회사는 초기의 적은 자본금과 인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SW 상품 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 제품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크게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L 사는 어떻게 이런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이 L사는 자신이 만든 SW를 고객에게 공급하 는 계약을 할 때 마다 지적재산권에 대하여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 L사는 처음부터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쟁쟁한 경쟁자가 있었고, 그 경쟁자 를 완전히 물리치기에는 회사가 가진 여력은 미약하였다. 그러나, 고객과 SW 공급 계약을 할 때 만큼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은 협상력으로 자신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부분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차라리 계약이 무산 되더라도 그 부분은 쉽게 양보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협상해 오 고 있었다. 회사의 리더와 구성원 모두는 상황이 어렵더라도 일관되고 강력한 협상력으로 중요 사항은 지켜내는 협상을 하자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L사의 이러한 일관성과 강력한 협 상진행을 바탕으로 L사는 지금도 자신의 SW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잘 지켜 오고 있다. 중소기 업일 때 협상을 하면서 어려웠던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상력을 약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개선해 왔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업으로 세계 속에서 계 속 성장해 나가고 있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협상력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오히려 키우고 있는 것이다.
[사례 3]
국내 건설사인 K사는 해외에서의 건설 수주를 할 때 마다 협상에서 언제나 힘든 과정을 거친 다. 경쟁 회사들을 따돌리는 것도 힘들지만, 고객사와 주요 계약 조건에 대하여 협상을 할 때 마다 고객사의 요구가 너무 강경하여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K사는 이럴 때 마다 계약이 무산되는 것에 대한 공포와 그다지 많지 않은 사업 기회로 인해 항상 불안한 마음이 든 다. 과연 이 K 기업은 어떤 협상 전략을 써야 하며, 앞으로 이 기업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 것인 가? 회사 내에서의 분위기는 현재의 취약한 상황에서는 고객사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 협상 을 굳이 하지 말자는 측과 앞으로의 상황을 더 개선하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중요한 사항에 대 하여는 강력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측이 맞서고 있다.
각 사례에서 협상과 회사의 경쟁력은 어떠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위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세 경우 모두 회사는 협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사업을 해오고 있었 는데, 세 경우 모두 그 회사의 입장에서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그러한 녹록하지 못한 상황이 라는 것은 아래에서 설명하는 BATNA (배트나)가 좋지 못했던 것을 의미한다. 협상을 적극적으로 준비 하기 위해서는 BATNA(배트나)를 분석하여야 한다. BATNA는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로 의역을 하자면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취할 수 있는 차선책이다. 즉, 이번 협상이 잘못되더라도 다른 의미 있는 대안이 있는 경 우에는 BATNA가 유효하게 있는 경우가 된다. 이러한 BATNA가 얼마나 강력하나에 따라 그 당사자의 협상력이 결정된다. 만일 상대의 BATNA가 더욱 강력하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협상 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BATNA는 회사 차원에서는 그 회사의 경쟁력, 즉 구매력 혹은 판매나 사업 기회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BATNA는 그대로 고정된 것이 아니 어서 노력하기에 따라 더 나은 BATNA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즉, 사업 기회를 더 많이 발굴하 거나, 회사의 기술력을 높여 더 좋은 조건을 조성하거나, 혹은 숨겨져 있는 다른 기회들을 발견 해 내어 이를 명확히 하여 더 나은 BATNA를 만드는 것이다. 만일, 지금 현재의 BATNA가 볼 품없다고 생각하여 BATNA를 개선시켜가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현재의 BATNA가 더 형편없 어 지거나 아예 없어져서 협상력은 더욱 약화 된다.
협상력=BATNA=회사의 경쟁력
사례 1의 경우 W사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사업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판단하기에 BATNA가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W사는 BATNA를 개선시켜 가려는 노력보다는 그 당 시의 현실과 타협하여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 협상(즉, 양보를 쉽게 하여 빨리 협상을 마무리) 을 하였고, 그 회사의 BATNA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BATNA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회사의 경쟁력 또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예를 들자면, 판매망이 매우 허술하고 취약하다거나 혹은 다른 판매 기회 혹은 사업 기회가 거 의 없거나, 기술력이 좋지 않는 경우가 BATNA가 약한 경우로,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경우 협상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요구 조건을 모 두 들어 주거나, 혹은 매우 소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의 협상 기회에서 도 그러한 자세가 계속 유지 되면 상대의 요구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회사의 BATNA도 개선의 여지없이 취약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나중에는 협상을 거의 항상 포기하 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BATNA가 무엇인지 알아 볼 필요도 없어지고 결국 현실을 그대로 받 아들인다. 그러한 상태가 계속 되는 경우 회사의 경쟁력은 점점 약해지게 되고, 더욱 약해진 경 쟁력은 취약한 BATNA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취약한 협상력과 협상 의 지는 취약한 회사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례 2 의 경우에도 L사는 초창기에는 회사의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회사의 경쟁력은 타 사를 압도할 정도가 결코 아니었고 초창기 신생 기업으로 이 L사는 협상에서의 BATNA도 취약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례 1과 다른 점은 더 나은 협상을 위해 이 회사는 BATNA를 키우고, 열 세의 상황에서도 강력한 협상을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이 사례에서처럼 더 나은 협상력을 위해 자신의 회사가 가진 BATNA를 연구하다 보면, 지금 자신의 회사가 처한 상황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느끼게 된다. 판매망은 충분한지, 판매 기회나 잠재적 고객은 충분한지 혹은 함께 사업을 영위할 사업 파트너들은 충분히 있는지 그리고 기꺼 이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려 하는지 등 모든 상황들이 곧 BATNA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잠재 적 BATNA들이 더 강력하고 견고할수록 더 강한 협상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협상력이 다 소 약한 처지에 있었던 회사도 더 나은 협상을 하기 위해 더 강한 BATNA를 가지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사례 2의 L사는 초창기의 어려움과 협상에서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코 중요 사항에 대한 협상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더 나은 협상을 위해 자신의 BATNA를 향상시키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L사를 지금의 세계적 SW사로 성장시켜 놓았다. 사례 3의 K사는 현재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사례 1 및 사례 2의 공통점은 현재 시점에서는 회사의 경쟁력이 타 경쟁자들에 비해 강한 것이 아니어서 BATNA 또한 약했다는 것이다. K사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협상을 포기하거나 수동적인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더 나은 BATNA를 만들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 는가에 따라 미래의 모습도 결정될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선도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의 협상력을 보면, 처음부터 그러했는지 혹은 최근에 회사의 상태가 세계에서 선도적 위치를 가지게 되어 그랬는지 모르나, 임직원들 이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매우 안정되어 있고 매우 체계적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여러 가 지 사정이 좋아지게 된 회사이어서 직원들에게 협상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 와서 그럴 수도 있 겠으나, 이미 회사 내에 문화로 자리 잡은 협상력은 단순히 몇 번의 교육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즉, 그러한 회사들은 아주 오랜 기간을 거쳐서 강력한 협상력을 키 워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아주 초창기부터 어느 리더에 의해 혹은 구성원 모두의 공감에 따라 적극적이고 강력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런 회사들도 초창기에는 회사가 가진 약한 경쟁력으로 인해 BATNA도 약했을 것이고 그러 한 사정으로 인해 협상을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도적 위치의 회 사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현실인식을 더 잘 하게 되었을 것이고, 더 나은 협상을 위해 회사의 BATNA를 키우는 작업(더 나은 제품, 더 나은 판매망 혹은 사업기회)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였 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 현재 회사의 경쟁력이나 힘이 약하기 때문에 협상을 포기하거나 주저하거 나 수동적으로 협상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지금이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협상력을 키우기 위 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협상력 강화 과정에서 더 나은 BATNA를 만들어 가는 노력 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력해진 BATNA는 곧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참고 도서 ① Getting to Yes (‘펭귄’ 출판사. 로져 피셔, 윌리엄 유리 및 브루스 패튼 공저) : 협상과 BATNA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번역서: Yes를 이끌어 내는 협상법 ‘장락’ 출판사. 박영환, 이성대 공역) ② 완벽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협상이 더 나은 프로젝트 성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이콘’ 출판사. 이성대, 박창우 공저)
협상교육과정 문의 : sdlee@snr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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